처음 사진을 찍은 것은 아마 국민학교 3학년때의 겨울.
흔하디 흔한 누르기만 하면 되는 자동 필름카메라였다.
그때는 앵글도, 빛도, 뭐도 아무것도 모른채 그냥 내가 봤던 풍경, 사람들이
종이로 남는다는 것만 마냥 신기했을터였다.
그리고 제대로 카메라..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 중학교 말기.
집의 장농 구석에 잠들어있던, 갈색 가죽케이스에 담긴 니콘의 수동카메라를
발견한 후 부터였다.
처음에는 그저 특이해보이고 은색의 묵직한 광택과 무게감이 좋아서였는데..
알고보니 이거 굉장히 손이 가는 애물단지가 아닌가.
자체 플래쉬도 없지, 필름도 자동으로 안돌아가지, 줌 기능이란 게 있긴 한데
쓰려면 가뜩이나 무거운데 뭔가 거대한 렌즈를 앞에 또 달아야지, 단다고
그냥 찍으면 되는 것도 아니고 뭔가 이리저리 돌려서 맞춰줘야지.
장난아니게 골치아픈 물건이었다.
하지만 당시 주욱 써오던 올림푸스의 자동카메라가 망가진 터였고.. 그렇다고
딱히 카메라를 사달라고 할 마땅한 이유도 없었기에 그 애물단지를 쓰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잡다하게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것이 짜증이 났지만..
점점 시간이 흐르며 그 잡다함이 오히려 여유와 신중함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피사체를 정하고, 빛의 방향을 보고, 렌즈를 써야할지, 아닐지. 쓴다고 하면
어느 정도에서 찍어야 할지, 조리개는 어느 정도로 열어야 하나, 어느 각도가 제일 좋을까.
자아 이쯤이면 좋겠다. 하나, 둘, 셋.. 찰칵. 그리고 끼릭끼릭 필름을 감으며
다음 피사체를 물색한다.
한장한장에 신중함을 담고, 마음을 담고, 기분을 담고.
막상 결과물을 현상하면 태반이 잘못된 노출에 잘못된 포커스로 엄한 사진뿐이었지만..
한 롱에서 몇장씩이나마 건질 수 있는 제대로 된 사진은 찰칵찰칵 자동카메라로
찍었던 사진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충족감을 주었다.
그렇게 1년여.
애송이의 손에 들려 제대로된 관리도 못받으면서도 그저 어린 주인에 맞춰 노익장을
불태우던 니콘은 결국 천수를 다해버렸다.
그 후에 새로운 자동카메라를 선물받기는 했지만 그 편리함과 비례하는 허전함에 그다지
마음을 주지 못하다 결국은 어머니의 차에 상비하는 나들이겸, 사고대비용 카메라로
전락을 하고...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만난 것이 로모..라는 작은 카메라였다.
본래 스파이용으로 사용되었다는 카메라답게 견고하고 작고 그러면서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던 그 작은 카메라에 상당히 빠져들었었다.
별다른 주변기기도 필요없고 오직 있는 것은 그 작은 검은색 카메라 하나.
결과를 끌어내는 것은 오로지 나의 스킬뿐.
"자아, 찍을테면 찍어보시지?" 라고 말하는 듯한 그 모습에
"암 찍어주마." 라고 녀석과 함께 여기저기 산으로 들로
강으로 뛰어다녔었다.
당시만해도 로모란 것이 그렇게 활성화가 되어있지는 않았던 시기라 필름도 현상도
힘들었지만 로모 특유의 터널효과를 기대하는 맘에 언제 현상이 되나..를 애타게
기다리기도.
집이 지방으로 이사를 가며 보급도 현상도 용이치 않아졌고.. 새로운 취미도 생기자
곧 작은 로모는 기억속으로 사라져버렸지만.
애석하게도 그때까지도 로모는 나를 인정해주지 않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남들은 다들 그렇게 멋지게 나오던 터널이 왜 나는 그리도 나오지 않았었던지..
"애송이, 나로 찍으려면 몇년 더 수행해라." 라는 충고였을까.
지금은 군대와 유학 덕분에 꽁꽁 싸여 작은 상자 안에 잠들어있을 로모.
근시일내에 커버린 나의 도전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텐데 말이지. =)
# by 하로君 | 2005/11/10 1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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